[무등칼럼] 2030년 한전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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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칼럼] 2030년 한전이 사라진다?
"한전 본사가 나주 새집으로 이사가는 날. 마치 큰 산을 하나 옮기는 것 같았다. 2014년 11월초부터 시작돼 약 한달간 이어졌다. 무려 1천500여 명의 직원이 이주하는데 물량만 5톤 트럭 853대 분량에 달했다. 전력공급의 핵심 기기인 1천200여 대의 초정밀 전력 ICT 설비들로 극도의 긴장감 속에 단 1초라도 멈춰서는 안 되었다. 대규모 정전사태 때문이다. 서울에서 나주까지 300㎞ 장거리 이사였으니 사전 모의훈련에 새벽시간대 경찰호위까지 군사작전을 방불케했다.… 그렇게 2014년 12월 1일, 한전은 나주 빛가람시대 첫 페이지를 열었다."
손발 안 맞는 정부 재생에너지정책
한전 조환익 전 사장이 쓴 책 '전력투구'(2016) 한 대목이다. 책에서는 빛가람시대의 개막과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세계에너지 시장의 대폭풍과 100조 원에 달하는 에너지 신산업시장의 판도변화 등 참 재미난 내용으로 가득했다. 또 '2030년 한전이 사라진다?'는 미래학자의 예언을 전제로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제6의 물결이 세계경제의 새 성장을 견인할 것이란 전망도 함께 내놓았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인 토니 세바는 '에너지 혁명 2030'에서 태양광과 풍력, 전기차 등 에너지 산업 재편이 이뤄지면 현재와 같은 전력회사는 없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즉, 소규모 단위 또는 개인이 전력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유형의 신산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본 것이다. 일종의 에너지 프로슈머(Producer+Consumer) 전력시장의 도래다. 진화된 건물관리 스마트그리드, 에너지 저장장치(ESS),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신재생에너지와 그것으로 생산된 전기를 저장했다 쓰는 마이크로그리드, 분산에너지 중개시장 등이 그것들이다.
한전이 펼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구축사업은 정부의 신산업 10대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지역주민과 전기회사가 함께 투자해 발생하는 수익을 공유하는 이익공유제다. 신안은 지난해 누적 100억 원에 달하는 햇빛연금을 주민들에게 지급했고 세계최대 규모의 해상풍력단지 조성으로 연간 수백만 원의 바람연금까지 내다보고 있다. 영광 등 인근 지자체들도 햇빛과 바람의 '연금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바다와 넓은 평야를 낀 전남은 분명 대한민국 에너지 지형의 못자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지자체의 움직임과 달리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정부 대책과 손발 안 맞는 정책으로 지역 반발이 거세다. 오는 2031년까지 7년동안 호남 등에 태양광 신규발전 허가를 중단키로 결정한 것이다. 한전이 전국 205곳 발전소를 계통관리 변전소로 지정하고 있는데 신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이 넘쳐나 지난 9월부터 전력계통 접속을 제한한 것이다. 출력제어는 전력공급이 수요보다 지나치게 많을 경우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을 방지하기 위해 발전을 강제로 중단하는 것이다. 한전은 이같은 전력수요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2036년까지 초고압 송전망 구축을 위해 수십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호남에서 남아도는 원전, 재생에너지 전기를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해 바다 밑에 초고압직류송전을 까는 서해안 해저고속도로로, 7조9천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동해안-수도권 전력망 사업도 4조6천억원이 투입된다.
그런데 그 많은 예산을 들여 꼭 해저 송전망을 깔아야할까? 전력소모가 많은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이차전지 등 아쉬운 기업들이 전력이 남아도는 전남에 와야하지 않을까? 이는 지금의 수도권 일극체제를 더 심화시킬 중앙집권식 정책 아닌가? 전남도는 그래서 전력다소비 기업의 지방이전과 차등요금제 등 에너지 분권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잉여전력 50%는 수도권 송전에, 50%는 지방 소비로 돌리자고 건의중이다.
문제는 이런 투자에도 불구하고 초고성능 컴퓨팅과 생성형 AI의 진화, 확산되는 데이터센터 등으로 전력 대란이 더 심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AI모델 하나가 사용하는 전력량은 전기차로 1만㎞ 주행량과 맞먹는다고 하니 결국 전력공급 대란으로 폐쇄예정이던 화석연료 발전소마저 계속 가동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에너지 분권시대 준비하자
국제에너지기구의 '2024 전기보고서'에서는 전세계 데이터센터(8천여곳 추정) 전기 소비량이 2022년 460테라와트시(TWh.당해 한국의 전력소비량 568TWh)에서 2026년 1천50TWh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한해 전력 수요에 맞먹는 규모다.
전문가들은 AI 고성능 연산 등 신기술 혁명의 속도에 비례해 현재를 잠재적 에너지 위기로 보고 있으며, 그래서 AI전쟁보다 전력전쟁이 먼저 닥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AI 대비도 중요하지만, 에너지 생태계 구축이 먼저라는 얘기다.
한전 본사가 나주로 이사온 지 딱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에너지 빅 리거'의 대망은 어디로 가고, "투자도 부족했고, 대비도 부족했다"는 김동철 한전 사장의 말처럼 송배전망 하나 해결 못하는 현실에 아쉬움만 가득하다.
발명왕 에디슨은 전구만 발명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전기를 저장해 이동하면서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리고 10년간 5만 번의 실험을 거듭해 배터리와 전기차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가솔린차가 값싼 석유를 만나 연료시장을 장악했고 전기차는 박물관 신세였지만, 시간이 흘러흘러 지금은 전기차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